[법정에서 만난 세상]패자부활을 위한 개인회생파산 등록일 15-09-11 15:01 조회 2,334
가계부채 1,040조원 시대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가 약 5,000만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한 사람 당 약 2,000만원의 빚이 있다는 소리니 참 놀랍고도 걱정스럽다. 그래서일까? 이제 개인회생파산제도는 이전처럼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일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주변의 흔한 문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현재 춘천지법 파산 1개부가 진행하고 있는 사건만 해도 개인회생·파산을 합쳐 1,400건이 넘으니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회생·파산제도를 이용하고 있는지는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회생파산제도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음에도 아직 많은 사람은 개인회생파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실제로 채권자들이 제출한 탄원서 중 다수는 “운 없는 성실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개인회생파산제도를 채무자 000이 악용하고 있다. 하늘 아래 이러한 법이 어디 있느냐”는 취지다. 그러나 현행 개인회생파산제도는 `운 없는 성실한 사람'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기보다는 `패자부활전'에 가깝다. 쉽게 말해 성실한 사람을 불운에서 구해주자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빚으로 인하여 채무자가 돈 벌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면책을 통해 다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이 옳은 것인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현재 미국이 유럽보다 2009년도의 금융위기를 좀 더 빨리 벗어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잘 정비된 회생파산제도를 통해 기업이나 개인이 빨리 경제활동에 복귀하였기 때문인 점'을 꼽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회생파산법을 마냥 `말도 안 되는 법'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현행 회생파산제도는 채무자가 성실한지 불성실한지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원칙적으로 채무자를 회생 또는 면책시키도록 정하고 있고, 다만 예외적으로 재산을 숨기는 등의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법원 역시 채무자가 불성실한 사람인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회생신청기각사유' 또는 `면책불허가사유'의 유무를 심사하고 있다. 채권자가 단지 채무자를 나쁜 사람이라고만 말할 뿐이라면 사실 법원이 도와줄 방법은 없는 셈이다.또한 회생파산제도에 대하여 모르기는 채무자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회생파산제도는 채무자를 도와주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본인이 현 상황을 그대로 재판부에 진술하고 필요한 서류만 제출하면 면책결정을 받는 데 별다른 무리가 없다. 심지어 파산의 경우 면책불허가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경미한 경우에는 재량면책을 받을 수 있는 길까지 열어놓고 있다. 그럼에도 채무자 중에는 회생파산 요건사실에 대해 법원에 허위로 진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허위진술은 법이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면책불허가사유이기 때문에 그럴 경우 사실대로 말했다면 면책받을 수 있던 당사자에 대해서도 면책이 허가되지 아니한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회생·파산을 고려하고 있는 채무자라면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경우에 따라서 당신이 의뢰한 속칭 `브로커'가 허위사실을 말하도록 당신을 유혹하거나 당신 모르게 허위사실을 법원에 진술할 수 있는데, 그에 따른 불이익은 온전히 당신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박병규 춘천지법 판사